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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30% 유대인 교육의 비밀, 하브루타

  • 하브루타영재교육협회
  • 2018-05-12 07: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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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교육 방법론의 차이

2. 하브루타의 정의

3. 뇌를 격동시키는 하브루타

4.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브루타

5. 짝을 지어 큰 소리로 내는 논쟁

6. 하브루타의 기원

7. 하브루타의 전형, 탈무드 논쟁법

8. 하브루타의 핵심, 질문법

9. 질문은 지식과 지혜를 캐내는 도구

10. 질문 잘하는 법

11. 하브루타 학습 순서와 팁

12. 하브루타를 위한 몇 가지 조언

13. 하브루타 학습법의 실제

14. 교사와 함께 하는 쉬우르

15. 유대인 랍비들의 하브루타에 대한 생각

16. 하브루타 학습의 예-논술

17. 참고: 취학 전 아동을 위한 하브루타 질문학습법

 

 

1. 교육 방법론의 차이

나라별로 보면 우리 한국인의 지능이 평균 106으로 세계 최고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IQ는 평균 94로 45위에 머물러 있다. 우리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공부한다. 세계적으로 학업성적이 가장 우수하다는 핀란드 학생보다 매일 2배 더 공부한다. 그러면서도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PISA)에서 핀란드에 뒤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유대인 학생들과 비교해도 우리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유대인들의 교육열이 높다고 하지만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의 우리 교육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스라엘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든지 하지 않든지 급여 차이가 거의 나지 않으므로, 힘들게 대학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입시 경쟁이 우리처럼 치열하지 않다.

 

한국인은 지능도 세계 최고이고, 공부하는 시간도 세계 최고이고, 교육열도 가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된 일인지 유대인과 비교해서 영 신통하지 않다. 우리는 노벨상이 평화상 1명이지만, 유대인은 스스로 유대인이라 밝힌 경우만 해도 2011년 현재 185명으로 노벨상의 22%에 이른다. 유대인이라고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숫자까지 합하면 대략 30%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한국계 학생이 1% 될까 말까 하지만, 유대인들은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인구 8천여 만 명의 한국인과 1500여 만 명의 유대인의 비교 결과이다. 그들은 어떤 한 두 분야가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특출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20세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아인슈타인이나 프로이트,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아브라함에서부터 다윗, 솔로몬, 예수, 바울, 스피노자, 샤갈, 카네기, 키신저, 스필버그, 찰리 채플린, 로스차일드, 골드만삭스, 조지 소로스, 그린스펀, 버냉키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 중에 유대인이 많다.

왜 우리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서도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유대인은 그런 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인물이 많을까? 왜 그들은 노벨상을 그렇게 많이 차지하고, 아이비리그에 그렇게 많이 들어가며, 각계각층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그렇게 많이 배출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유대인을 다룬 책들에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수도 없이 나열되어 있다. 역사교육, 고난 교육, 영재교육, 쉐마교육, 유머, 경제교육, 탈무드 교육, 침대머리 교육, 밥상머리 교육, 쩨다카 정신, 티쿤 올람 등등. 하지만 필자는 교육학을 30여 년 전공한 전문가로서 ‘하브루타’라는 말을 접하자마자 “아하! 바로 이거다.”라고 소리쳤다. 바로 교육 방법론이 유대인 영재들의 비결이었고 그것이 바로 우리와 큰 차이점이었던 것이다.

 

2. 하브루타의 정의

하브루타는 보통 2명이 짝을 지어 프랜드십(friendship), 파트너십으로 공부하는 것(study partnership)을 말한다. 때에 따라 여러 명이 하는 경우도 있으나 4명을 넘지 않는다. 교사 없이 학생들이 짝을 지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논쟁 수업 방식을 말한다. 즉 친구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하베르는 히브리어로 친구라는 뜻이다. 하브루타는 이 하베르에서 왔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가 ‘샬롬 하베르’ 이다. 이것은 친구야 안녕? 너에게 평화가! 등으로 해석되는 인사말이다.

 

유대인들의 개념에서 친구는 서로에게 효율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이다. 친구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베르’의 어원은 ‘하브’인데 이 말은 ‘신세’나 ‘은혜’를 말한다. 친구란 은혜를 끼치고 되갚아주는 역학적 관계임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브루타 수업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창의적인 생각을 일깨워주므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된다.

 

하브루타는 고립되어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탈무드의 해석을 놓고 서로 모여 토론하고 논쟁하여 의미와 교훈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방법이다. 교사는 수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논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이 전통은 예수님 당시 가말리엘이 가르쳤던 힐렐학교에서도 행해지던 교육방법이라고 하니 얼마나 오랜 전통을 가졌는지 짐작할 만하다.

 

유대인들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가정에서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와 자녀가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자녀가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동화를 들려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자녀가 암기와 이해를 잘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중얼거리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하면서 수업하는 것도 하브루타고,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 가르치면서 토론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예시바에서 토라와 탈무드의 구절을 놓고 둘 씩 짝을 지어 심각하게 논쟁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회당에서 평생지기와 만나 탈무드 공부를 하면서 토론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하브루타를 간단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서로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

 

이것을 단순화 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약간 전문화 되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된다. 거기서 더 깊어지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 되면 논쟁이 된다.

 

3. 뇌를 격동시키는 하브루타

짝을 이루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가 어떻게 특별한 유대인을 만들어 가는가? 하브루타가 어떻게 유대인들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게 하며, 의사나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가가 되게 하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만드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브루타가 뇌를 격동시켜 최고의 뇌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뇌과학에 관심을 가져왔고 자녀교육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가장 많이 읽은 책이 뇌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곧 나의 뇌이고, 공부는 바로 뇌로 하기 때문이다. 암기하는 것도 뇌에 저장하는 것이고, 책을 읽는 것도 뇌에 지식을 쌓거나 안목과 통찰력을 얻기 위함이다. 학교에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도 모두 뇌를 계발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지식, 안목, 지혜, 사고력, 가치관, 정체성, 지성, 감성 그 어떤 것이든 모두 뇌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뇌를 모르고서 교육을 논할 수 없다. 그런 뇌를 공부한 배경이 있었기에 하브루타를 접하자마자 “아하! 바로 이거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브루타는 무엇보다도 뇌를 격동시키는 교육이다. 왜 그런가? 질문과 토론, 논쟁만큼 뇌를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논쟁을 떠올려 보라. 그들의 논쟁은 가장 격렬한 머리싸움이다. 법정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그 논리를 파악해야 하며, 자신이 왜 옳은지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상대방이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거나 증거를 댈 때 그것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면 판결에서 지게 된다. 토론과 논쟁은 뇌를 계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고등 사고력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렇게 변호사와 검사가 논쟁하듯이 어렸을 때부터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으로 공부한다면 뇌가 계발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뇌를 격동시킨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각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토론과 논쟁을 하려면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대해 반박할 말과 논리를 치열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하브루타는 세상의 모든 대상과 사물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또 하브루타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견해, 다양한 관점,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창의성이란 다르고 새롭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현재 세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인데, 그 창의성을 가장 잘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브루타이다. 왜냐하면 하브루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는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체가 랍비와 현자들의 토론과 논쟁집인데, 그런 대가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하고 다른 견해를 갖게 하는 것이 하브루타의 특징이다. 토론과 논쟁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만든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뒤집어 생각하게 한다. 상대방의 의견과는 다른 나만의 견해를 가져야 토론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토론에 이길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하브루타는 나만의 생각, 새로운 생각,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더불어 하브루타는 의사소통 능력, 경청하는 능력, 설득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대에 들어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더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실력을 갖추어도 그것을 인간관계를 통하여 풀지 못하면, 그것은 썩고 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전혀 쓸모가 없다. 하브루타 자체가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이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특히 친구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고 인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만들며, 평생지기를 만들어준다. 만일 우리에게 평생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한 명만이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하브루타는 그런 친구를 여러 명도 만들어준다. 하브루타 짝은 학교에서 회당에서 예시바에서 여러 명이 생기기 때문에 아주 친한 친구가 여러 명 생기게 된다. 그리고 회당 하브루타까지 연결되면 죽을 때까지 매일 만나는 평생지기도 생기게 된다. 유대인 인간관계 네트워크의 핵심에 하브루타가 있는 것이다.

 

하브루타의 장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공부다. 진도보다는 심도 있는 공부를 통해 친구에게 전달하고, 가르치고, 토론한다.

-뇌를 격동시키는, 뇌를 움직이게 하는, 뇌를 계발하는 교육이다.

-생각하게 하는 교육,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

-부모와 깊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부모와 대화하는 중에 모든 고민을 가정에서 해결한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게 하고 표현력과 발표력을 길러 소통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사회성이 크게 발달한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남과 다르게 보게 하고, 대안을 찾게 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한 가지에 대해 수많은 방법, 수많은 시각, 다양한 관점으로 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여 사고의 폭을 넓히고 창의력을 고양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충분한 대화로 여러 가지 문제가 쉽게 풀리고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며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게 한다. 

 

4.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브루타

아이가 4-5살 정도일 때는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수많은 질문을 부모에게 한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아이들은 계속 질문한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것투성이 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나중에 당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고, 하찮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아이들 시각에서는 너무나 알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호기심과 자기 동기, 질문을 유지만 시켜주어도 우리의 교육은 성공이다. 왜냐하면 바람직한 교육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자기 동기를 가지고 스스로 알고 싶어서 계속 질문하면서 공부하기만 하면 부모나 교사가 해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하브루타를 정착시키느냐, 정착시키는데 실패하느냐가 달려 있다. 아이의 그런 호기심을 계속 살려서 아이가 스스로 궁금한 것들을 조사하고 생각하고 공부하게 할 수 있느냐는 부모가 그 호기심을 얼마나 받아주고, 계속 자극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시기의 호기심이나 질문하는 것이 꺾이면 계속 타율적으로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이 시기에 호기심과 질문이 유지되면 스스로 찾아서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계속 질문을 하면 부모 입장에서 귀찮고 짜증이 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할 때 계속 답을 가르쳐주게 되면 부모 입장에서 힘들고 귀찮게 되어 있다.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질문하는 아이에게 면박을 주기도 하고, 다양한 의견이나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입장에서의 답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을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 아이가 그 궁금증을 스스로 풀어가게 하는 시간으로 만들면 부모에게 힘든 시간이 아니다. 즉 아이가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해답을 알려주지 말고 다시 질문을 해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게 하거나, 함께 책을 찾아보면서 계속 그것과 관련된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부모에게도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하려면 부모가 공부하지 않으면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공부하는 내용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 부모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책을 읽고 공부한다.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 등을 공부해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 분야를 공부해서 자녀와 토론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유대인 교육의 기본이다. 그래서 유대인 공동체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성인 교육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회당이나 공동체에서 지속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공부하는 것은 그 자녀들에게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전수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스스로 공부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렸을 때의 호기심을 유지한 사람들은 성공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은 짓궂은 장난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미켈란젤로나 피카소, 모차르트, 브람스, 베토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장난기가 넘쳤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이 있었다. 이런 특성은 영유아 아이와 동일한 모습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모습은 어른이었지만 내면은 모두 아이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완벽하지 않다. 미성숙하고 변덕스럽고 무책임하다. 하지만 그들은 온몸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온 몸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멀어진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천진스럽게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곧 삶이 놀랍고 경이로운 것임을 경험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아이다움과 깨달음을 간직한다. 즉 어린이다움과 어른다움을 함께 간직하는 것이다. 그것을 유지시키는 방법이 하브루타에 있다.

 

5. 짝을 지어 큰 소리로 내는 논쟁

학생들이 하브루타로 수업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둘이서 말싸움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논쟁한다. 소리 내어 공부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빠르게 익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들으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듣기 때문이다. 그 속도가 빠를수록 뇌는 빠르게 움직이다. 뇌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뇌는 발달하고 사고는 넓고 깊어지며 상황 대처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은 높아진다. 이들은 책을 읽어도 속으로 읽지 않고 소리를 내서 읽는다. 그러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들은 소리를 내고, 일어나 걸어 다니면서 외우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를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 움직임을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그만큼 효과도 높아진다.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공부해야 한다. 탈무드는 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성전聖典이기 때문이다. 이때 탈무드 공부법으로 개발된 것이 하브루타다. 탈무드가 완성된 것이 AD 500년경이니 탈무드의 역사가 1600년, 하브루타 학습법도 그만큼 역사가 깊다고 하겠다. 하브루타 학습법은 일대일로 친구와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학습법이다. 지금도 여전히 유대인은 이 교육법으로 공부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머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하브루타 학습에 큰 장애물이다. 주입식 교육과 하브루타 교육은 정반대 교육이다. 주입식이 선생, 진도, 지식습득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브루타는 친구, 심도, 지혜습득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유대인들이 하브루타만 하는 건 아니다. 쉬우르(Shiur)라고 하는 수업도 병행한다. 이는 선생과 학생들이 함께 수업하는 시간이다.

 

하브루타든 쉬우르 수업이든 가장 핵심적인 학습 키워드는 질문이다. 서로 묻는 것이다. 서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질문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고력을 확장하고 논리력과 발표력, 경청력, 포용력까지 두루 갖추게 한다. 질문은 그래서 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심장과도 같은 것이다. 그 심장이 없이 교육한다? 그것은 심장 없는 좀비 교육과 전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질문하는 법을 훈련하지 않으면 하브루타를 할 수 없다. 친구가 친구를 만나 공부하는 것은 바로 질문과 답하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이 없이 학습한다면 그것은 잡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6. 하브루타의 기원

앞에서 천재가 된 제롬에서는 힐렐 학교에서 하브루타가 시작되었고, 랍비 하이가 예후다 하 나시에게 제안한 것으로 설명하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하브루타가 구전 율법과 관련이 깊으며 탈무드의 형성 과정과 그 괘를 함께 한다는 점이다.

 

토라가 완전히 정리되고 편집되어 확정된 시점을 학자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로 본다. 토라를 정리 편집한 뒤로 토라를 한 글자라도 변경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토라의 율법을 일상생활에 그대로 실천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무리가 따랐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해석이 필요했다. 에스라가 처음으로 그 해석을 시작했고, 또 허용했다. 그런 토라에 대한 주석과 해석이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 구전 율법이다. 초기에는 이 구전 율법을 기록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래서 글로 남길 수 없기 때문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토라는 전혀 변경이 불가능했지만, 토라에 대한 해석과 주석은 학자들마다, 랍비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토라의 정신에 맞는 것인지 학자나 랍비들 사이에 서로 토론과 논쟁이 붙었다. 그런 토론과 논쟁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더 풍부해지고 다양해졌다. 해석과 주석에 대한 토론과 논쟁의 구전 율법을 편집한 것이 미쉬나이고, 그 미쉬나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모은 것이 게마라이며, 이 둘을 합친 것이 탈무드이다.
 

그러므로 하브루타의 기원은 토라를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학자나 랍비들이 계속 토론하고 논쟁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미쉬나나 게마라가 글로 남기는 것이 금지되면서 구전으로 이어졌고, 이것을 잊지 않고 후대에게 계속 전하는 한 방법으로 하브루타가 시작되었다. 토라에 대한 해석이나 미쉬나, 게마라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 여러 가지 충돌이 있었고, 그것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리되고 정교화 되었다. 그런 토론과 논쟁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했고, 둘 사이에 토론이 가장 효율적이었으므로 하브루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말을 많이 할 수 있고 토론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팀이 두 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브루타는 BC로 그 역사가 올라가며, 20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하브루타는 AD 70년경에 벤 자카이에 의해 예시바가 탄생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었다. 예시바 학생들은 온종일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나서 저녁에 한 두 시간 정도 선생의 강의를 듣는다. 이 때 랍비는 질문도 받고 대답도 해주면서 학생들이 더 예리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론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 탈무드에서는 동일한 내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그대로 모두 실어놓는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하지 않고 수많은 해답들을 제시하여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하고, 결론은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한다. 우리와 같이 정해진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이런 예시바의 교육은 대부분 하브루타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브루타의 기원에 대해 랍비 아하론 손(Aharon Shon)은 랍비의 부족에서 찾는다. 유대인들은 어디서든지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해야 하는데 가르쳐 줄 수 있는 랍비는 많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도시에 몰려 있어서 시골 지역 사람들은 토라를 배우기 어려웠다. 그래서 누구나, 어디서든 성서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교사가 되는 하브루타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7. 하브루타의 전형, 탈무드 논쟁법

 

이런 하브루타의 전통은 탈무드 논쟁법(talmudic debate)이라는 치열한 연구 방법을 탄생시켰다. 유대인들은 탈무드의 내용 중 한 구절을 놓고도 한두 시간씩 논쟁을 벌이는 것이 보통이다. 한 쪽이 탈무드를 해석하면 다른 쪽은 그것을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하나하나 질문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말하면 상대방은 다시 그 답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지고 반박한다. 여기서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그곳을 집중 공격해 곤경에 빠뜨린다. 답변자는 가능한 한 모든 가정 하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공격에 날카로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전에 철저하게 공부해오지 않으면 토론 자체가 되지 않는다. 논쟁에서 실컷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석자와 질문자의 역할을 서로 바꾸어 다시 논쟁을 시작한다.

 

유대인들이 논쟁하는 모습은 하도 격렬해서 싸우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때론 주먹으로 책상을 쳐가며 큰소리로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삿대질을 해가면서 서로 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토론을 한다. 이럴 때는 옆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공부하는 탈무드의 집이나 예시바, 회당 등은 항상 시끄럽다. 그러나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싸우듯이 논쟁했다고 해서 둘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는 없다. 토론자들은 서로 상대방의 학습태도나 방법을 존중한다. 토론과 논쟁이 끝난 후에는 언제 논쟁을 벌였냐는 듯이 금방 다정해진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따질 때는 따지고 절제할 때는 절제하는 능력, 즉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이런 방식으로 키워왔다.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웠느냐, 선생님 말씀 잘 들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했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를 중시하지만 유대인들은 아이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배웠고,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질문을 가졌는지를 더 중시한다. 우리는 배운 내용이 중요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아이가 무엇을 궁금해 하고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묻고 무엇에 대해 토론했는지 궁금해 한다. 성서 신명기 6장 7절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강론이란 단어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는 자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절기의 기원과 의미, 방법 등에 대한 질문을 유도한다. 이런 질문과 대답의 교육 형식은 어린이들을 학습의 주체자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학습자가 가만히 앉아 교사의 가르침을 듣고만 있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어린이가 배움의 주체가 되게 한다. 학생이 이런 의식을 가지면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어린이들의 사고에 자극을 주어 학습의 효과를 주며 인지 발달을 돕게 된다. 이들은 성서나 탈무드 등을 공부할 때 계속 토론하고 논쟁한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이러한 하브루타를 자녀와 함께 하면서 자녀에게 생각하게 하고 책을 읽도록 만든다. 

 

이런 탈무드식 토론은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에 대해 학생들 끼리, 또는 랍비와 학생이 토론하는 것이다. 이 토론 교육은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된다. 한 주제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이에 대해 서로의 주장을 펴며 변론한다. 이렇게 토론식 수업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이기에 유대인은 때로는 까다롭게 느끼기도 한다. 유대인의 변호사나, 학자들은 매우 우수하고 꼼꼼한 것은 그들의 토론식 교육에 의한 훈련 때문이다. 탈무드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토론 교육이 가능하도록 질문과 응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브루타의 전통이 전문화 되어 등장한 것이 탈무드 논쟁법이다. 탈무드는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어려워 “읽는 책이 아니라 연구하는 책”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글자도 깨알같이 작아서 탈무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경을 쓴 사람이 많다. 이 교육 방법은 한 책상에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 마주보고 논쟁하면서 탈무드를 연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논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분석적이고 비평적이며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논리적인 사람이 된다.

 

학생들이 하브루타로 수업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둘이서 말싸움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논쟁한다. 소리 내어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빠르게 익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들으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듣기 때문이다. 그 속도가 빠를수록 뇌는 빠르게 움직이다. 뇌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뇌는 발달하고 사고는 넓고 깊어지며 상황 대처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은 높아진다.

 

이들은 책을 읽어도 속으로 읽지 않고 소리를 내서 읽는다. 그러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들은 소리를 내고, 일어나 걸어 다니면서 외우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를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 움직임을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그만큼 효과도 높아진다. 하브루타 친구 없이 혼자 공부할 때도 마치 하브루타 하듯이 걸어 다니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서서 토라를 읽고 기도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앞뒤로 몸을 흔들면서 한다. 가만히 있으면 토라를 읽고 있지 않은 것이고 몸을 움직이면 읽고 있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 혈액 순환이 잘 된다. 뇌는 우리 몸무게의 2-3%에 불과한 1.4kg에 불과하지만, 산소 소비량은 25%에 이른다.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뇌에 빠르게 혈액을 공급하여 뇌가 빠르게 움직이게 한다. 랍비에 의하면 그런 동작이 시작된 이유는 옛날에 토라가 매우 귀했고 비쌌기 때문이다. 토라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양피지가 필요한 데, 양 30 마리를 죽여야 얻을 수 있었다. 또 토라를 양피지에 필사하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써야 했다. 토라 한자 한자를 아주 정성들여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권을 여러 사람이 보기 위해 읽고 뒤로 몸을 젖히고, 다시 다음 사람이 읽고,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읽게 되면서 생긴 전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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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브루타영재교육협회 2018-05-12
    바로위에 한글파일첨부했습니다.(글이 너무길어 모두 들어가지않아서. pdf를 한글로 변환해서 약간불안정하지만 보는데 지장이 없을것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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